시스템이 있어야 회사가 흔들리지 않는다
시스템이 부실하면 흔들린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 한 명이 조직 전체를 바꿔놓는 걸 여러 번 목격했으니까요.
그런데 35년 동안 여러 기업을 경험하면서,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좋은 사람은 회사를 성장시키지만, 좋은 시스템만이 그 성장을 지켜낸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직원 한 명이 퇴사하던 날
제가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계기는 한 제조업체에서 사업본부장을 맡자마자 벌어진 일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영업을 총괄하던 팀장이 있었습니다. 거래처 관리, 가격 협상, 클레임 대응까지 혼자서 능숙하게 처리하는 사람이었고, 회사 매출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그 사람의 인맥과 감각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팀장이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퇴사를 결정했을 때 드러났습니다. 인수인계 서류는 몇 장 안 됐고, 거래처와의 협상 히스토리, 각 고객사별 특이사항, 클레임 처리 기준 같은 것들은 전부 그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었습니다.
퇴사 후 석 달 동안 매출이 눈에 띄게 흔들렸습니다. 후임자가 무능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물려줄 ‘기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채용한 게 아니라, 사실상 그 사람의 머릿속에 회사의 핵심 기능을 통째로 맡겨놓고 있었던 것이죠.
시스템이 없는 조직이 반복하는 실수
이 경험 이후로 여러 기업을 거치며 비슷한 패턴을 계속 목격했습니다. 시스템이 없는 조직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 특정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 업무가 멈춘다
– 같은 실수가 시간이 지나도 반복된다 (기록되지 않기 때문)
– 신입 직원 교육에 매번 같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 의사결정 기준이 담당자마다, 그날 기분마다 달라진다
– 담당자가 바뀌면 거래처가 불안해한다
특히 작은 회사일수록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규모가 작으니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겸하고, 그 사람에게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작은 회사일수록 “우리는 작으니까 시스템 같은 건 나중에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정반대입니다. 작을 때일수록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야 나중에 커졌을 때 무너지지 않습니다.
시스템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시스템’이라고 하면 값비싼 ERP 프로그램이나 복잡한 조직도를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로 현장에서 가장 효과가 컸던 시스템들은 훨씬 단순했습니다.
제가 이후 경험했던 회사들에서 실제로 적용해 효과를 본 것들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1. 업무 매뉴얼 (Standard Operating Procedure)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처리한다”를 문서로 남기는 것. 거창한 매뉴얼이 아니라, 반복되는 업무 10~20가지만 한 페이지씩 정리해도 효과가 컸습니다.
2. 의사결정 기준표
“이 금액 이하는 팀장 전결, 이 이상은 대표 결재” 같은 기준을 미리 정해두는 것. 담당자가 바뀌어도 판단 기준은 바뀌지 않습니다.
3. 거래처·고객 히스토리 기록
거래처 정보, 상담 및 협상 이력, 클레임 이력, 특이사항을 개인 메모가 아니라 회사 공용 자료로 남기는 것. 이건 나중에 담당자가 바뀔 때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4. 정기적인 업무보고체계 구축 및 문서화
누군가 퇴사하거나 부서를 이동할 때가 아니라, 평상시에도 주요 업무보고 내용을 문서로 남기는 습관을 만드는 것. 그렇게 쌓인 기록은 사람이 바뀌어도 회사에 그대로 남습니다. 인수인계 때도 따로 자료를 새로 만들 필요 없이, 평소 쌓아온 것만 넘겨주면 됩니다.
시스템은 사람을 대체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시스템을 강조한다고 해서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조직에서는, 사람이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판단에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기준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빠르게 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시스템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입니다.
뛰어난 사람이 시스템까지 갖춘 조직에서 일할 때, 그 조직의 성과는 훨씬 오래 지속됩니다. 반대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 있어도 시스템이 없다면,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 조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지금 당장 점검해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래 항목을 스스로 점검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 [ ] 우리 회사에서 한 사람이 퇴사하면 즉시 문제가 생기는 업무가 있는가?
– [ ] 반복되는 업무 처리 기준이 문서로 남아 있는가, 담당자 머릿속에만 있는가?
– [ ] 신입 직원이 들어왔을 때 참고할 자료가 있는가?
– [ ] 거래처·고객 관련 정보가 개인 메모가 아니라 회사 자산으로 관리되고 있는가?
– [ ] 의사결정 기준(금액, 권한, 절차)이 명문화되어 있는가?
이 중 세 개 이상에서 “아니오”가 나온다면, 지금이 바로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할 때입니다.
마치며
좋은 사람은 회사를 성장시킵니다. 하지만 그 성장을 지켜내는 것은 결국 시스템입니다. 사람은 언젠가 떠나지만, 시스템은 남아서 다음 사람에게 이어집니다.
35년의 경영 경험에서 제가 배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원칙은 이것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고, 좋은 사람이 없어도 굴러가는 회사를 만들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