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못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유

승진 못해도 괜찮다, 행복하게 살자|회사의 평가가 내 인생의 평가가 아닌 이유

직장에서 승진은 단순히 직급이 한 단계 올라가는 일이 아닙니다.

연봉과 권한이 달라지고,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갖습니다. 가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고, 동료나 후배 앞에서 느끼는 자부심도 생깁니다.

반대로 승진에서 밀리면 그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일을 부정당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가 먼저 승진하면 마음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겉으로는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한가’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승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직급이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승진하지 못하면 실제로 급여와 권한에서 차이가 벌어지고, 앞으로 회사에서 맡게 될 역할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 회사와 조직에서 사람들의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먼저 승진한 사람이 정말 직장생활의 승자일까요?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도 하게 됩니다.

나는 정말 그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것일까요? 아니면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요?

먼저 네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장면 #1. 공장장보다 전문위원이 더 잘 맞았던 기술자

제법 오래전, 국내 대기업 출신들이 나와 설립한 어느 중소기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였습니다.

그 회사의 공장장은 기계와 생산라인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온 분이었습니다. 해당 분야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경험과 지식이 풍부했습니다.

기계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생산라인의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설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찾아냈습니다. 회사로서는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자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장 직원들과 원만하게 소통하고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 그분에게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설명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울화가 터지곤 했습니다.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공장장의 말투와 행동을 힘들어했습니다. 공장장은 직원들이 자신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했고, 직원들은 공장장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그 밑에서 일하던 생산과장이 나름대로 중간 역할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양쪽 사이에 끼어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대표도 속이 편할 리 없었습니다.

우연히 그 자초지종을 들은 저는 대표에게 한 가지 방법을 권했습니다.

공장장을 전문위원으로 모셔서 그분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회사에서 충분히 활용하되, 현장 직원들의 일상적인 지휘와 생산관리는 생산과장에게 맡겨보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회사에서 밀어내자는 뜻이 아니라, 잘하지도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관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게 해드리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다만 그런 조직체계가 익숙하지 않은 분에게는 관리직에서 전문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좌천처럼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표가 역할 변경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꾸준히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년쯤 지나 다시 만난 대표는 예전보다 공장이 아주 조용해졌고 일도 잘 돌아간다며 흡족해했습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며 다소 기운이 빠졌던 전문위원도 새로운 역할에 적응했다고 했습니다. 신입직원 한 명을 곁에 두고 자신의 기술과 경험을 전수하면서 전문분야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생산현장에서 그분의 지도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직접 나섰지만, 직원들과 일상적인 상하관계로 얽혀 있지 않으니 예전과 같은 불화도 거의 생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준 결과였습니다.

장면 #2. 먼저 승진한 동료들보다 오래 남은 만년 부장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에게 공기업에 근무하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동생의 승진 문제를 걱정하며 어떻게 조언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동생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조용히 앉아 자기 분야를 공부하는 학구적인 성격이었고, 직장에서도 맡은 일은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사를 살뜰하게 모시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역할에도 능숙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그런 성격 때문에 승진에서 계속 밀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물론 형이 전해주는 동생의 이야기였으므로 모든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묘사하는 동생의 모습이 형 자신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처럼 물었습니다.

“그게 동생 얘기요? 아니면 당신 얘기요?”

속으로는 ‘자기 형하고 똑같구먼’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승진에 너무 목매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시켜주면 책임 있게 하고, 시켜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마음 편히 자기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승진해보겠다고 성격에도 맞지 않는 아부를 억지로 하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면서 술자리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승진하기도 전에 몸과 마음부터 지칠 수 있습니다.

대신 정해진 업무시간에는 집중해서 일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충실하게 수행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분야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면서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막말로 공기업이니 임원까지 올라가려고 무리하지 않는 한,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을 쉽게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생은 결국 만년 부장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임원이 된 것도 아니고, 조직에서 눈에 띄게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정년을 눈앞에 두고 직장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반면 옆에서 승진을 잘하던 동기들과 자신보다 먼저 승진한 후배들 가운데 일부는 빠르게 임원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들이 경쟁에서 크게 앞서나간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에 주기적으로 불어오는 정치적 풍파에 휩쓸리면서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오래전에 회사를 떠났다고 합니다.

승진 속도만 놓고 보면 그는 분명 뒤처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장생활 전체를 놓고 보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장면 #3. 승진경쟁에서 스스로 한발 물러난 공무원

제가 아주 아끼는 친한 후배 가운데 공무원이 한 명 있습니다.

그 후배도 한때 승진 문제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승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여기저기 얼굴도장을 찍으러 다녔고, 원하지 않는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마시는 술이 쌓이면서 몸까지 상했습니다. 승진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술자리를 다니는데, 정작 그 과정에서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승진이 정말 네가 원하는 일이냐?”

더 높은 직급에서 더 큰 책임을 맡고 조직을 이끄는 일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동기와 후배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싫어서 승진하려는 것인지 먼저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 자리가 정말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남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이른바 ‘한직’을 돌아다니면서 마음 편히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한직이라는 말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진경쟁의 중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고, 인사권자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말합니다.

조직에는 그런 자리의 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일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자신의 생활과 건강을 지키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입니다.

그 후배는 실제로 그런 방향을 택했습니다.

승진을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줄였고, 몸을 상해가며 술자리를 버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조직에서 크게 주목받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자신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전보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승진을 포기해서 불행해진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경쟁에서 한발 물러난 뒤 오히려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삶을 찾은 사람입니다.

장면 #4. 임원이 된 날부터 그다음을 걱정한 사람

민간기업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이사나 상무와 같은 임원 자리에 오르면 이제 승진경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 것처럼 보입니다. 직원들도 임원이 된 사람을 보며 회사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때부터 더 큰 불안이 시작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번 이사나 상무가 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사가 되면 상무를 바라보고, 상무가 되면 전무를 생각합니다. 더 올라가지 못하면 현재의 자리마저 잃을 수 있다는 불안도 생깁니다.

마치 멈추는 순간 쓰러질 것 같은 외발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알던 어느 임원도 그런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등기이사의 임기는 3년이었습니다. 임기가 끝난 뒤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어렵게 임원으로 승진했지만 승진 발표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부터 걱정이 시작됐습니다.

‘3년 뒤에는 어떻게 하지?’

임원이 되기 전에는 임원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막상 그 자리에 오른 뒤에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습니다.

저는 고민하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으로 이미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맡은 업무에는 최선을 다하되, 이번 일이 끝난 뒤 회사 밖에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도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세요.”

그는 이후 한 차례 더 재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임원생활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지금 그는 동네 도서관을 자주 찾으며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내는, 말하자면 ‘조금 젊은 할배’가 되어 있습니다.

이사나 상무라는 직함은 사라졌지만 그의 삶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승진과 재신임을 걱정하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 사람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

네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다릅니다.

한 사람은 공장에서 사람을 관리하는 자리 대신 전문위원이라는 역할을 맡았고, 한 사람은 만년 부장으로 정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승진경쟁에서 스스로 한발 물러났고, 한 사람은 임원까지 오른 뒤 회사를 떠났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선택을 모든 직장인이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승진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승진하지 못했다고 해서 직장생활과 인생에서 실패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네 사람의 경로, 서로 다른 삶의 기준

기술자 → 전문위원
일상적인 사람관리에서 벗어나 기술 문제 해결과 경험 전수에 집중했습니다.
만년 부장 → 전문성 유지
빠른 승진 대신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며 정년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공무원 → 경쟁에서 거리 두기
원하지 않는 경쟁을 줄이고 건강과 생활의 만족을 되찾았습니다.
임원 → 퇴직 이후의 일상
직함을 내려놓은 뒤 도서관과 독서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문의 네 사례를 정리한 도식입니다. 어느 경로가 더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역할과 삶을 함께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리직이 성공은 아닙니다

장면 #1의 공장장은 능력이 부족해서 전문위원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여러 직원의 감정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조직을 관리하는 일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사람을 관리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능력입니다.

그런데 많은 회사에서는 직원이 경험을 쌓고 실무능력을 인정받으면 자연스럽게 관리자로 승진시킵니다. 높은 직급과 보상을 제공하는 경로가 관리직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사람관리를 잘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기술자를 억지로 관리자로 앉히게 됩니다. 당사자는 익숙하지 않은 일에 시달리고, 직원들은 서툰 관리방식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회사는 뛰어난 기술자 한 명을 잃고 불편한 관리자 한 명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장면 #1의 공장장은 관리직에서 벗어난 뒤에야 다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의 일상적인 관리는 생산과장이 맡고, 그는 회사가 꼭 필요로 하는 기술적인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관리자가 되는 것만이 승진이고, 전문직으로 일하는 것은 승진에서 밀리는 것이라는 생각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실무능력과 관리능력의 차이, 관리직과 전문직이라는 두 가지 성장경로에 대해서는 「유능한 실무자는 유능한 관리자가 되는가?」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같은 사다리에 올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개의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승진한 사람이 최종 승자는 아닙니다

장면 #2의 만년 부장은 승진 속도만 놓고 보면 동기와 후배들에게 뒤처졌습니다.

그가 임원이 된 것도 아니고 특별히 화려한 경력을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전공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면서 정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면 그보다 먼저 승진해 임원이 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조직의 정치적 변화에 휩쓸려 먼저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렇다고 만년 부장으로 남은 사람이 임원이 된 사람보다 더 성공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임원이 되어 더 큰 책임을 맡고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는 목표입니다.

다만 먼저 승진한 사람이 언제나 직장생활의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빠르게 올라가는 대신 일찍 조직을 떠날 수도 있고, 크게 주목받지 않더라도 자신이 잘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한 번의 승진 발표만 보고 누가 성공했고 누가 실패했다고 판단하기에는 그 뒤에 남아 있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나는 승진하고 싶은 것일까요, 뒤처지기 싫은 것일까요?

승진을 준비하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 그 일을 하고 싶은가?

더 높은 직급에서 더 큰 책임을 맡고 싶은 것인지, 사람을 이끌고 조직의 성과를 책임지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질문에 분명히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승진을 위해 노력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필요한 능력을 준비하고, 자신의 성과를 조직에 알리고, 더 큰 역할을 맡을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도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자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싫어서 승진을 좇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동기가 과장이 되었으니 나도 과장이 되어야 하고, 후배가 부장이 되었으니 나도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직급이 뒤처지면 사람으로서도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장면 #3의 공무원 후배가 힘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승진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건강까지 해치면서 자신을 인사권자에게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승진 방법이 아니라, 그 승진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묻는 일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고 승진경쟁에서 조금 떨어진 뒤 그의 직급이 크게 높아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은 훨씬 편해졌고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승진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누구에게나 좋은 선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남들과의 비교 때문에 계속 좇고 있다면, 멈춰서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불안은 끝날까요?

우리는 흔히 승진하지 못한 사람은 불안하고, 승진한 사람은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장면 #4의 임원은 승진한 날부터 그다음을 걱정했습니다.

어렵게 임원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임기가 끝나면 다시 선임될 수 있을지, 다음 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 회사의 정치적 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승진은 계단을 오르는 일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멈추면 쓰러질 것 같은 외발자전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사가 되면 상무를 바라보고, 상무가 되면 전무를 바라봅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리는 줄어들고 경쟁은 더 치열해집니다. 책임은 커지고 실패했을 때 잃는 것도 많아집니다.

그런데 회사의 사다리에는 끝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대표가 될 수 없고, 대표가 된 사람도 언젠가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아무리 높은 직급까지 올라가더라도 회사생활은 언젠가 끝납니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올라가는 일만큼 내려온 뒤의 삶도 준비해야 합니다.

현재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회사 밖의 삶을 준비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젠가 직함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이 현재의 직급에도 덜 매달릴 수 있습니다.

장면 #4의 임원은 한 차례 더 재신임을 받았지만 결국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동네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의 직급으로만 보면 그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자기 시간을 보내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 이상 임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승진하지 못한 이유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여기까지 읽고 승진하지 못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승진에서 반복해서 밀리고 있다면 그 이유는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은 맡은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는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일했지만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업무만 처리했을 뿐, 다음 직급에서 요구하는 책임과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상사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거나, 자신이 만든 성과를 조직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승진에서 밀렸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은 돌아봐야 합니다.

  • 맡은 업무를 기대 수준 이상으로 수행했는가
  • 일을 많이 한 것과 실제 성과를 만들어낸 것을 혼동하지 않았는가
  • 혼자 일하는 능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도 보여주었는가
  •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제시하고 끝까지 책임졌는가
  • 다음 직급에서 요구하는 역할과 책임을 이해하고 있는가
  • 자신의 성과와 기여를 조직이 알 수 있도록 설명했는가
  • 승진 후 맡게 될 업무가 정말 자신의 적성과 맞는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업무능력과 의사소통 방식을 개선하는 일은 승진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직장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충분히 돌아본 뒤에도 자리 부족, 인사 적체, 상사와의 관계, 학연과 인맥, 조직 내부의 정치적인 사정 때문에 승진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꾸기 힘든 조건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때는 선택해야 합니다.

승진 가능성이 더 큰 조직으로 옮길 것인지, 현재 회사에 남아 자신의 전문성을 쌓을 것인지, 아니면 승진경쟁에서 조금 떨어져 직장 밖의 삶에 더 많은 가치를 둘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승진하지 못한 것과 승진경쟁에 삶을 걸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승진하지 못한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는 원래 승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은 누구보다 승진하고 싶었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심 없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승진하고 싶었는데 되지 않았다면 속상한 것이 당연합니다. 후배가 먼저 올라가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실망하고 아쉬워해도 됩니다.

다만 그 감정 때문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실패로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승진하지 ‘못한 것’과 승진경쟁에 모든 삶을 걸지 ‘않기로 한 것’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승진에서 밀린 것처럼 보였던 삶이 시간이 지나면 건강과 생활, 전문성을 지킨 선택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장면 #2의 만년 부장은 임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분야에서 일하며 정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장면 #3의 공무원은 승진경쟁에서 스스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자리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건강과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두 사람이 조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직장생활을 실패라고 부를 이유도 없습니다.

조직이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한, 맡은 일을 통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고 자아실현의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꼭 누군가를 지휘하는 위치에 올라가야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의 평가는 내 인생 전체에 대한 판정이 아닙니다

직원은 승진 결과를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내리는 승진 결정에는 개인의 능력 외에도 여러 요소가 개입합니다. 위에 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필요한 역할과 개인의 강점이 맞아야 합니다. 조직개편의 시기와도 맞아야 하며, 회사가 앞으로 어떤 사업을 확대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필요한 사람의 유형이 달라집니다.

회사의 판단이 항상 공정하고 정확한 것도 아닙니다. 회사가 사람을 잘못 볼 수도 있고, 조직정치가 개입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당사자가 자신의 능력과 기여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회사의 승진 결정은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자리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그 판단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에 대한 판정은 아닙니다.

회사가 나를 과장이나 부장으로 승진시키지 않았다는 사실과 내가 무능한 사람이라는 결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회사가 나를 임원으로 다시 선임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내가 살아온 인생이 실패했다는 결론 사이에는 더 먼 거리가 있습니다.

직급이 사라진 뒤에도 인생은 계속됩니다

회사에서 받은 직급은 퇴직하는 순간 대부분 내려놓아야 합니다.

회사 안에서는 누군가가 나를 이사님, 상무님, 부장님이라고 불러주지만 회사를 떠난 뒤에도 그 직급이 내 하루를 대신 살아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쌓은 전문성, 함께 일한 사람들의 신뢰, 건강, 가족과의 관계, 직장 밖에서 가꾸어온 자신의 생활은 퇴직 후에도 남습니다.

장면 #4의 임원은 이제 더 이상 임원이 아닙니다. 지금은 동네 도서관을 지키는 조금 젊은 할배가 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이 반드시 직장생활의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끊임없이 다음 자리를 걱정하며 외발자전거를 타던 시절보다, 책을 읽고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는 지금이 더 편안하고 충만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직급이 올라가는 방법은 열심히 배우지만, 직급이 사라진 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좀처럼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오는 일이 더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급은 언젠가 사라집니다. 직급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수 있는 삶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승진해도 괜찮고, 승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승진하고 싶다면 도전해도 됩니다.

더 큰 책임을 맡고 사람을 이끌며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일이 정말 원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가도 됩니다. 필요한 능력을 준비하고, 성과를 만들고, 자신의 기여를 조직에 제대로 알리는 것도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승진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인생까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승진경쟁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반드시 도망은 아닙니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맞는 삶을 선택하는 용기일 수도 있습니다.

시켜주면 책임 있게 맡고, 시켜주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일을 제대로 하면서 자신의 전문성과 생활을 지켜가는 것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선택입니다.

빨리 올라간 사람이 먼저 회사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만년 부장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며 정년까지 남을 수도 있습니다. 관리직에서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기술자도 있습니다. 승진경쟁에서 물러난 뒤에야 건강과 마음의 평온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더 성공한 삶을 살았는지는 직급표만 보고 알 수 없습니다.

승진해도 괜찮고, 승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 자리를 원하는지 알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행복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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